방주에 올라타야 합니다

순종함으로 살았던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동물들...

모두 방주 안으로 들어가니 그 문을 노아가 아닌 하나님이 직접 닫아 버립니다. 

▶ 방주를 지으라 명령하신 분도 하나님,
▶ 비를 내리신 분도 하나님,
▶ 그 방주를 모두 채우신 분도 하나님,
▶ 마지막 그 문을 닫으신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는 방주와 같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야 하는데 도무지 사람들이 그때처럼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은 교회를 조롱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두에게 120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분명한 이유와 명분을 들어 그들은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로 갑자기 찾아온 하나님의 심판 앞에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미 많은 시간과 기회들을 이 땅의 교회와 전도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거짓이라고, 종교 사기꾼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사기행각이라고 말하며 절대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날은 도적같이 옵니다. 
그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갑자기 우리 개인과 가정, 전 인류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구원의 방주에 함께 올라타고 그 안에서 주신 소명에 오직 순종의 삶을 살 때...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고, 가장 멋진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진짜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우린 위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정말 강한 위로와 소망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내면의 두려움은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왜 이런 두려움이 끊임없이 밀려 올까요?
그것은 그 두려움의 대상이 그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두려움은 그 대상이 아닌, 선포된 말씀이 나를 변호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담대함이 생깁니다. 
결국 그 담대함으로 우린 문제를 극복해 갑니다. 
하지만, 순종이 없을 때 우린 두려움이 증폭됩니다. 문제가 더 크게 보이게 되고 점점 더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강하고 담대해야 할 내용은 그 싸움, 환경, 상황이 아니라, 결국 내 자신이 말씀 앞에 순종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 자신의 검증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며, 그래서 그 말씀이 나를 보호한다고 확신할 때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혹은 '얼마나 큰 문제가 내게 생겼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두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내 자신이 바로 [불순종]하고 있다고 느낄 때 동시에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린 두려움이 밀려올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더욱 돌아가(회개)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결단)하고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 내면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만 보이기에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케 될 수 있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사람(아담)을 만드시고 그토록 기뻐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그토록 <완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자연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이토록 하나님의 멋진 계획 가운데 환상적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조금도 흠이 없이 너무도 완벽한 존재로 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성품과 기능)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들은 과연 어떨까요?
[창1:28]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창1:29]엔 심지어 모든 땅의 채소와 식물, 나무들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먹거리로 주신 것입니다. 
공간도 만드시고, 그 공간을 생명체로 채우시고, 거기다 각각 누릴 수 있는 권세까지 허락하신 하나님...
이제 온 세상은 그 하나님의 기쁘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래전 우연한 기회로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 아이스쇼]를 보게 됐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어른인 내게도 좋은 공연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그 공연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몰입해 있는 그 아이를 보는 기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날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눈빛을 아버지인 내 자신을 통해 느꼈습니다. 나를 닮았음에 감사하고, 그 닮은 아이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것으로 또한 기뻤던 그 순간...
우리를 완성하신 그날, 하나님은 이처럼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리가 바로 그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응원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내와 응원은 결코 쉬지않고, 끝없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지난 과거 얼마나 헌신적이었는가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적인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섬김은 물론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어야 합니다. 
은혜 없이, 기도없이 섬기려 하면 꼭 반드시 자기의 공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지금까지 유지해온 모든 신앙적 열정이 아닌, 종교적 열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과의 결정적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과거 중에 잘한 것만 기억하십니다.
[사탄]은 꼭 보면 못한 것, 실수한 것,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 들추어냅니다.

물론 우린 지난 과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지난 죄악을 다 도말하시고 용서하셨다".
이 점에서 우린 모두 하나님처럼 잊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개인적으로 볼 때 다시는 내가 옛생활로 돌아가지 않을 것에 대한 각오로 나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두 가지 정리 [잊어야 함][기억해야 함]이 공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입니까?
이제 지금까지 잘 지켜온 것들을 결코 놓지 말고 더 부지런히 믿음의 길을 걸어서 최후의 순간까지 낙오하지 않고 장차 성취될 약속의 은혜들을 누릴 수 있도록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조금 더 힘을 내라”

[히6: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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