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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은 약속의 땅을 밀어냅니다

전 섬기던 교회에선 매주일 예배후면 잔치국수를 먹고 싶은 만큼 충분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히 다른 점심을 먹을 상황이 아니거나 그냥 그저 습관처럼 먹는 사람을 제외하곤 언제든 기회만 되면 다른 음식을 찾으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주일에 한번 먹는 별식 국수도 입에 물리는데 아무리 좋은 {만나}라도 매일 먹었으니 얼마나 물렸겠습니까?

한없이 편해지려는 것이 사람이요 아무리 새로운 것을 줘도 만족함이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이게 하나님이 기대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인내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잠시후면 가나안에 들어갈텐데, 그래서 그때까지 버티라고 그 어떤 식거리도 찾기 힘든 광야에서 최고의 식탁을 준비해 주셨건만 우린 그것에도 불평을 늘어 놓기 일쑵니다. 

만나, 메추라기 그리고 샘물...
이 모든 것은 광야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 그래서 불평이 가득하여 인내하지 못하는 삶은 더이상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할 수 없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도 주신 그 모든 것이 기적임을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삶에 기적을 행하셨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왠지 지겹다던 그 국수가 그리워 집니다.

불평은 약속의 땅을 밀어냅니다

죽다 살아난 자 있어도 죽었던 자가 산 자는 없다

우린 누구나 살다가 한번쯤은 거반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혹은 정말 죽기 일보직전의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내에 있던 모든 피를 다 쏟고 최소 48시간 이상을 완전히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난 경우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 사람은 누구나 지극히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젊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심지어 그 어떤 절대 권력자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선 모두 맥없이 주저앉고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처럼 모두가 죽음 앞에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인류의 선택(죄)의 결과(죽음) 입니다. 

하지만 오직 한 분 예수님만 그 결정적인 문제(죽음)를 해결하시기 위해 누구도 풀어낼 수 없는 그 영원한 저주 앞에 죽음을 이기고 완전히 부활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해답(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린 이미 그 문제지 앞에 [해답지]인 성경을 통해 그냥 답을 써내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지만 그 해답지는 믿고 써내려간 사람에게만 유효합니다. 
오늘 우린 조금도 의심없이 그 [해답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죽다 살아난 자 있어도 죽었던 자가 산 자는 없다
믿음은 통계나 확률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통계나 확률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확률이나 통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
님의 말씀은 그 어떤것 과도 비교하거나 대신할 수 없는 절대 진리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진리인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이 땅의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며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지금껏 단 한번도 무언가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파기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응답되었고 지금도 응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답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히 삶을 맡기면 세상의 그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믿고 물 위로 뛰어내렸던 베드로처럼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 묶이지 않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적과 영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그 진리를 믿은 이들을 통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역사하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내 마음의 바오밥나무

내 마음의 바오밥나무

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는 무서운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오밥나무]라는 나무의 씨앗입니다. 문제는 그 별의 땅 속이 온통 바오밥나무의 씨앗 투성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오밥나무는 자칫 손을 늦게 대면 어쩔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은 별 전체를 온통 뒤덮게 되고 뿌리가 별에 구멍을 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어느날 왕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규율 문제야,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나면 정성스럽게 별의 몸단장도 해 주어야 해. 규칙적으로 신경을 써서 장미와 구별할 수 있게 바오밥나무를 재빨리 뽑아 버려야 하거든. 바오밥나무는 아주 어릴 때 장미나무와 비슷하거든. 그건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쉬운 일이기도 해”
 
어린 왕자는 아침저녁으로 바오밥나무를 찾아 제거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게으름뱅이가 어린 바오밥나무 세 그루를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파멸한 별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인생사의 슬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성장하여 큰 사건을 만듭니다.
아주 미미한 일들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자라서 슬픔의 역사를 탄생시킵니다.
아이들의 불장난이 큰 화재를 낳고,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온 물이 댐을 무너지게 하며, 빙산 한 조각이 대형 조난사고를 유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의 씨앗은 싹부터 잘라 버려야 합니다.
아니, 아예 뿌리째 캐내어야 합니다. 마치 어린왕자가 바오밥나무가 작을 때부터 부지런히 제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바오밥나무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도 빨리 그것을 캐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

지금 당신이 혼란, 고통,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당신을 위해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마스터 플랜을 펼치는 것은 대부분 우리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입니다.

지금 전혀 이해되지 않고 사방이 꽉 막혀 도무지 어떤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해도 우리는 믿음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마스터플랜을 보아야 합니다. 

마스터플랜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눈앞의 상황만 보며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본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으며, 지금의 상황을 뛰어넘어 펼쳐질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최종목적지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멋지게 우리를 이끌어 주셨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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