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과하는 힘
기도는 고난을 없애는 무기이기보다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틀림없지만 기도의 응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내가 구한 것을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도는 즉각적 응답이기보다는 고난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그 고난을 기쁨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기도 가운데 어려운 문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고난의 정점과 자신만의 기다림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며 조급해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그것도 정말 많이 사랑하시지만 너무나 불완전한 우리의 기준과 생각대로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다행아닙니까?
정확하신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대로 나에게 응답을 주시니 말입니다.
오늘도 답답한 마음 가득할찌라도 그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에서 정한 응답을 사모해 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
하나님의 검증은 사람의 눈 밖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God's standard to evaluate a person does not veer from human beings' own standard)
즉,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 의해서 철저히 검증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가는 모든 길에 동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곁에서 모든 고통을 함께하고, 심지어 전쟁의 최전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검증이 단순히 모세에게만 있었을까요?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세]가 직접 보았습니다.
사람도 보고, 사람도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하나님의 눈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코 사람의 평가와 사람의 눈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의 눈을 통해 사람을 읽고 해석합니다.
그런 여호수아에 대한 평가는 시작과 끝의 표현을 보면 더 멋집니다.
그는 [여호수아 1:1]에 ‘모세의 수종자(종)’이라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나중엔 어떻게 마칩니까?
시간이 지나 [여호수아 24:29]에서는 '여호와의 종'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특별한 경우(사람과의 관계적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려는 섭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당하면 하나님도 인정하시지만 사람에게도 인정받게 됩니다.
매우 단순하나 분명한 원리, 이 원리를 놓치지 않는 복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감사절
예수님께서는 빈 들에서 소년이 준비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들만도 5천 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배고픈 군중들은 흥분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군중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닌 이적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보았지만 정작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함께 흥분하기만 했지 그 기적의 주인을 보는데는 초점을 놓친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세속적인 욕망은 누가 오른편에 설 것인가로 다투었습니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우린 지난 시간들을 기억하며 감사의 내용을 떠올립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었으며 누렸다는 것을 우린 압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내용에 흠뻑 빠져 감사의 내용만을 묵상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히 나의 도리를 다했다고 만족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린 [추수감사절]을 맞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감사의 내용보다 먼저 그 감사의 내용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눈동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 감사의 내용은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 했기 때문입니다.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성경은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내가 보통 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면 이런 저런 불편한 마음들 또한 받는 은혜만큼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우린 그때 마다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가던 길을 그냥 갈까요?
아니면 성경이 제시한 그 길을 가야 할까요?
어차피 두 길 모두 내게는 불확실한 길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매우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내가 왔던 길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불확실하지만 성경이 말씀한 그 길을 따르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동안 충분히 검증하고 체험한 실제 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이젠 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그 길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 길은 이미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충분히 미리 보여준 매우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믿음의 정점과 그 한계의 기로에 서 있는 분들에게 믿음의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