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는 휴지통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휴지통이 없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성공과 감격의 순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난과 어려움의 시간들도 충분히 소중한 것으로 만드시는 분이며 우리의 모든 결과물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녹아있는 은혜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나온 삶의 흔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은 지우고, 또 어떤 것은 감추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면 좀 더 편해질 것 같고, 좀 더 성장할 것 같은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우린 오히려 그러한 아픔과 어두움의 시간들을 충분히 더 나은 것을 향한 밑거름과 혹은 발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오히려 그러한 시간들을 억지로 지우려는 의도가 앞으로 다가올 더 좋은 것들까지도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사로잡지 않도록 하는 과정에서 극복해 내는 모든 것들은 내 자신과 환경을 더욱 새롭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가장 당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 혹은 기억들은 무엇인가요?
이제 그것을 지우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히려 그로인해 내가 더욱 새로워지고 다듬어지는 위대한 재료와 소재로 삼아 보다 멋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나를 던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필립스 브룩스 

The only way to get rid of your past is to make a future out of it. 
God will waste nothing.        - Phillips Brook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누구나 삶에서 만나는 문제, 즉 장애물을 만나면 소극적이 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든지 아니면 현상유지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문제를 회피해 버립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자신의 의지도 문제이지만, 실제로  해결 방법을 모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해결을 위한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치나 회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한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볼 종이나 스마트폰 메모장이 필요합니다. 
   2)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적어봅니다. 
   3) 변화 가능한 가능성을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해 봅니다. 
   4) 그 내용을 기도제목에 올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기도합니다. 
   5) 기도하고 있는 그 문제를 풀어갈 현실적인 방법들을 찾아 하나씩 도전해 봅니다.

위 5가지 내용을 순서대로 도전해 본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게 될때, 그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었던 누군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날지 못한다면 뛰십시오, 
뛰지 못한다면 걸으십시오, 
걷지 못한다면 기어가십시오.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섬김의 원칙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섬김과 봉사를 위해서 반드시 돈이나 또 다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다지 건강한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누군가를 섬기고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선 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보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고,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바른 섬김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면 섬김에서 돈은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마음이 없다면 모든 것이 짜증이 되고 섬김을 받는 사람도 섬기는 사람도 기쁨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또는 하찮은 일이라도 내 마음과 몸과 시간을 들여 헌신할 때 진심과 감동이 전달되고 상대방을 살리는 더 값진 섬김이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진심으로 사랑했을 때 그때는 돈이 기쁨을 준 것도 아니고, 어떤 물질 공세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하는 기쁨, 작은 것도 크게 해석해 주는 그 기쁨이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섬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섬김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며 거대한 꿈을 꾸기 보다는 작은 것부터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섬김을 오늘 있는 그곳에서,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그 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인내

인내(忍耐)는 참는 것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인내는 지혜의 동반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곧 인내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린 누구나 삶의 현장에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인내입니다. 

한두 번 인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인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내는 단순히 성격을 다스리고, 화를 참으며, 대인 관계성에서 오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내는 자신과의 약속과 닥친 상황을 이겨내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온전한 인내는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참았다고, 그리고 수년을 참아왔다고 온전한 인내를 이루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은 끝까지 참아낸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숙입니다. 

성경은 "인내하는 자는 복되다"(약5:11)고 말씀합니다. 
인내하는 자에게는 복이 임합니다. 
그것은 인내하는 사람만이 얻는 삶의 선물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결국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나 이 인내를 이룬 사람들이요, 
그것을 끝까지 견디어 낸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전 순간까지 참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결과와 열매를 볼 때까지 참아내는 삶, 
극복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인내입니다. 

 

얼마만큼 더 보여줘야 믿겠습니까?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말씀)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 부르심을 받고 지난 1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다리지 못한 불신앙은 결국 이스마엘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인한 갈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믿음 없음으로 인한 결과는 잊지 못할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상을 자꾸 기웃거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필요하지만 다른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베드로가 풍랑 중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뛰어내려 예수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람을 보고 성난 파도를 보는 순간 믿음이 흔들리고 두려움이 생기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물속으로 빠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 광풍이 불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 시선이 고정된 삶은 바람이 불든, 태풍이 불어오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다소 바보스러워도 꾸준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결국 그곳에 승부가 있습니다. 

 

어설픈 죽음이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8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죽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보다 무서운 것은 죽지 않은 자아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채, 열심만 있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뿐입니다. 

요즘 너무 많은 기독교인들이 복음에 대한 좌절감, 무력감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무너짐과 좌절감은 결코 코로나로 인해 우연히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우리 속에 충분히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뿜어져 나왔을 뿐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결코 열정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열정이 식고, 감사가 살아졌다는 것은 이미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나약함이 견디다 못해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지난 우리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겪었던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가장 극렬한 그 어떤 문제들 보다 치열하고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오히려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욱 강해졌고 열매를 맺어갔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들을 위한 '위대한 배려'도 내가 받아 누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은 옛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희생도 없고, 헌신도 없는 오늘날 종교생활에서 죽고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내 열정 모두 쏟아 붓고 혼신을 다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