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친구는 어떤가요?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 까지 우린 누구나 항상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어린 시절은 부모 형제와 동행하며 자라고, 그 후 가족을 넘어선 친구라는 또 다른 관계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론 소중한 친구는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게 됩니다.
마음이 아플 때 의지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향기가 진한 꽃 주위에 있으면 나에게도 향기가 나고, 악취가 나는 곳에 있으면 내 몸에서도 악취가 납니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가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한 사람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친구다” 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시인 월리엄 블레이크는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겐 우정이 있다.” 는 말까지 남겼으니 친구의 의미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실 때도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결코 혼자일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주변 친구는 어떤가요? 
주위 사람들을 칭찬하고, 자신도, 이웃과 친구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야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해 집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강력한 도우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내 삶을 우연히 채워가는 모든 것...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결코 운명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들이 삶 속에 만나는 관계를 통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만남의 선택, 관계의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복된 관계를 이루어 가려는 우리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평가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낮게 여기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과도하게 자신을 높게 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가지 모두 문제일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과도한 점수를 주다보면 남은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되며, 반대로 자신을 저평가 하는 사람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사회성과 관계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내 자신을 평가하기 원하실까요?
그것은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은 겨자씨처럼 정말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린 현재 내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현실이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우리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도 상황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녀라는 사실로 우리를 평가하시고 바라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앞이 깜깜하고 심지어 삶의 모습과 상황은 실망스럽고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일찌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가 보는 그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 기대와 믿음을 '겨자씨'로 비유하셨습니다. 
지금은 도무지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점과 같은 존재이지만 나중엔 공중의 새들이 둥지를 틀어 살 수 있을 만큼의 큰 나무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 나의 환경과 상황, 그리고 상태만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의 존재감, 그리고 가치,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실 뜻을 보는 믿음과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

반드시 하나님은 그런 눈으로 본 나와 우리를 그와 동일한 나무로 만들어 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믿음의 큰 그림...
지금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제대로 시도한번 못해보고

하나님의 훈련학교 필수과정 중 하나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다림을 통해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실수는 조급함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했습니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시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대체로 더디게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림에 지치지 않아야 합니다. 
기다림의 훈련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간혹 우린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비교해 봅니다. 
너무나 쉽게 변하고, 조금도 안정적이지 않은 우리네 모습을 보며 과연 그 분들과 비교자체가 가능한 일인지 의심마저 들곤 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이 처음의 마음과는 다르게 훗날 변질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놓치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처음의 그 마음 끝까지 간직하고 달려가는게 쉽지 않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한가지 살짝 부끄러운 것은?
그분들은 그래도 힘이라도 제대로 써봤다지만 나는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희생과 헌신도 해 보지 못하고 벌써 부터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을 보며 과연 그분들과 견주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인지 부끄럽고 안쓰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눈동자

하나님은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눈에는 30만 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무엇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려고 하면 자동으로 눈을 감으며 보호를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반사신경에 스스로도 놀랄때가 많습니다.  

각종 이물질이 눈 안에 들어오려고 하면 눈썹과 속눈썹이 보호막이 되어주며, 작은 먼지라도 들어갔다 싶으면 금세 눈물이 나와 먼지를 밖으로 밀어냅니다. 
물론 재채기도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외부침입자 방어기능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동자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꺼풀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비유로 우리에게 이해를 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기능과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기능과 능력은 우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시켜 주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내에서 설득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린 지금까지 믿고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2021년 한 해 역시 우리를 눈동자처럼 매 순간 지켜 주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복된 삶이 되길 바랍니다.

 

매일 내게 엄청난 돈을 입금해 주는 은행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매일 누구에게나 86,400달러라는 거액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이 은행은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날 모두 찾아야겠죠!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우리는 86,400초를 부여받고 있지만, 버려진 시간처럼 그냥 무의미하게 없어져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잔액이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내일을 위해 남겨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뽑아서 써야 합니다. 

이처럼 시간은 매일 누구에게나 공짜로 주어지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입니다.
 
또 당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도 선물 받은 86,400초의 시간... 
여러분은 어떻게 사용하실 계획인가요?

어느새 2021년, 오늘도 그 돈은 입금됐습니다. 
이제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몫이겠지요?

이제 지난 2020년의 아쉬움은 잊고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2021년의 그 잔액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멋진 온세대 가족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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